DNA에서 RNA로,
떠오르는 RNA 편집 치료제
떠오르는 RNA 편집 치료제
2025.07.25 쿼드벤처스 리서치팀
유전자 치료제는 질환을 야기하는 유전자를 파악하여 이를 수정, 교정하는 치료제로서 근본 원인을 찾아 접근하는 생명과학 정점의 기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최근 유전자 가위를 활용한 최초의 유전자 편집 치료제 카스게비 Casgevy가 FDA 승인을 받으며 우리 생활에 한발짝 더 가깝게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유전자 치료제는 2017년 럭스터나 Luxturna가 FDA 승인을 받으며 포문을 열었으며, 뒤이어 2019년 FDA 승인받은 척수성 근위축증 치료제 졸겐스마 Zolgensma가 연 1조원 매출의 블록버스터로 성장하며 바이러스 벡터 기반 유전자 치료제 붐을 일으켰습니다.
유전자 치료제는 작용 방식에 따라 크게 유전자 삽입, 유전자 간섭, 그리고 유전자 편집의 세 가지 방식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유전자 삽입은 결핍되거나 결함있는 유전자를 보충하여 정상 단백질 생성을 돕는 방법으로, 바이러스 벡터 유전자 치료제나 mRNA 백신 등이 이에 속합니다. 유전자 간섭은 과활성화된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하여 유해 단백질 생성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주로 siRNA, 안티센스 올리고뉴클레오타이드 치료제들이 이에 해당됩니다. 유전자 편집은 돌연변이 유전자를 직접 교정하여 기능을 회복하거나 질병 진행을 늦추는 접근법으로, DNA를 직접 잘라 교정하는 CRISPR-Cas9 기술과 RNA 수준에서 엑손을 교체하거나 편집하는 라이보자임 트랜스-스플라이싱 등이 해당됩니다.
또한 유전자 치료제는 대상 유전 물질에 따라 DNA와 RNA로 나눌수 있으며, 최근 들어 RNA 편집 치료제가 주목받고 있는데, 이는 DNA를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유전자의 발현 산물을 교정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으로 기대되기 때문입니다
흔히 DNA를 우리 몸 설계도 원본에 비유하며, RNA는 그 정보를 복사하여 단백질 생성 공장으로 운반하는 메신저로 설명합니다. 즉, 세포 핵 속에 안전하게 보관된 DNA의 유전자 정보는 필요할 때 전사(transcription) 과정을 통해 메신저 RNA (mRNA)에 복사되고, 이 mRNA가 세포질로 나가 리보솜에 결합하면 번역 (translation) 과정을 통해 특정 아미노산들이 조립되어 단백질이 합성됩니다. 이와 같은 DNA → RNA → 단백질 생성의 일련 과정을 분자생물학에서는 중심 원리, 센트럴 도그마 Central Dogma 라고 부르는데, 이는 1958년 분자생물학자 프랜시스 크릭에 의해 처음 제창된 개념입니다. DNA로부터 정보가 일방향으로 전달되어 단백질이 생성된다는 이 원리는, 이후 역전사효소의 발견으로 예외 사례 (HIV 바이러스의 RNA → DNA 역전사 등)가 알려지긴 하였으나 생물학의 근간 개념으로 굳어졌습니다. RNA는 이러한 중심 원리 과정에서 DNA의 복제본이자 단백질의 설계도로서 핵심적인 매개자 역할을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RNA는 단백질 생성을 위한 일시적 정보 매개체라는 것입니다. DNA와 달리 RNA 분자는 세포 내에서 오래 남아있지 않고 필요에 따라 생성·분해되므로, RNA를 조작하더라도 원본 유전자 DNA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고 사라지게 됩니다
다시 말해 RNA 편집은 치료 효과가 일정 기간 한정되며 부작용 발생시 중단하여 원상태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반면 DNA를 편집하면 치료 효과가 영구적인 대신, 예기치 못한 부작용도 영구적으로 남을 수 있다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RNA 편집 치료제가 주목받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가역성과 안전성에 있습니다
또한 RNA 단계에서 문제를 교정하는 것은 단백질을 직접 보충하는 것보다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특정 단백질이 부족한 질환이 있다면, 과거에는 그 단백질 자체를 주기적으로 투여하는 단백질 치료를 생각했지만 비용이나 면역 반응 측면에서 한계가 있었습니다. 반면 mRNA를 투여하여 몸 속 세포들이 필요한 단백질을 직접 생성하면 더 낮은 용량으로도 지속적으로 정상 단백질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아이디어를 증명한 사례가 바로 mRNA 백신의 성공입니다. 2020년대 COVID-19 팬데믹을 거치며 인류 최초로 상용화된 mRNA 백신은 우리 몸에 스파이크 단백질의 mRNA “설계도”를 주입함으로써, 체내 세포들이 항원 단백질을 만들고 면역반응을 유도하였습니다. mRNA 기술의 성공은 전세계 제약업계에 RNA 분자의 산업적 잠재력을 각인시켰습니다. 그 결과 RNA를 이용한 혁신 신약 개발에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였으며, RNA 치료제는 더 이상 생소한 틈새 기술이 아니라 백신부터 희귀질환 신약까지 두루 활용되는 주류 플랫폼으로 부상한 것입니다.
RNA를 편집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RNA 분자의 염기서열을 변경하거나 교정한다는 뜻입니다. 주로 메신저 RNA (mRNA)를 표적으로 하는데, mRNA는 DNA로부터 전사된 초기 전구물질인 pre-mRNA가 스플라이싱 splicing 과정을 거쳐 만들어집니다. pre-mRNA는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 정보를 담고 있는 구간 (엑손 exon)과 스플라이싱에 관여하는 구간 (인트론 intron)으로 구성되며, 스플라이싱 과정을 통해 인트론 구간은 제거되고 엑손 구간들이 이어지며 최종 기능을 담당하는 mRNA가 완성되어 단백질 합성에 사용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엑손들의 정확한 연결과 치환이 정상 단백질 합성을 위해 중요한 전제 조건이 됩니다. 특히 여러 개의 돌연변이 유전자가 원인인 질환의 경우, 하나의 유전자 변이를 수정하는 방식으로는 치료가 어려울 수 있으며 잘못된 엑손 자체를 수정하는 접근이 필요합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앤드류 레버 교수는 이를 두고 “한 글자의 오타를 고치는 게 아니라 아예 한 문단 전체를 편집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1] 고 설명했습니다. 즉 RNA 엑손 교정 기술이야말로 여러 돌연변이로 복잡하게 망가진 유전 질환을 바로잡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1] Mallapaty, S. “Move over, CRISPR: RNA-editing therapies pick up steam.” Nature, 6 Feb 2024
현재 개발 중인 RNA 편집 치료제 기술은 작용 기전에 따라 크게 세 갈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단일 염기 치환 (base editing), 둘째는 엑손 교체 (exon replacement), 셋째는 트랜스 스플라이싱 (trans-splicing) 방식입니다. 아래 표에는 이러한 각각의 접근법을 활용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를 정리하였습니다.
(1) ADAR 단일염기 편집
첫 번째로, ADAR 기반 단일 염기 편집 기술이 있습니다. ADAR는 우리 세포에 원래 존재하는 효소로서, RNA 분자의 아데노신 (A) 을 이노신 (I) 으로 탈아미노화하는 효소입니다. 염기 I는 세포에서 G로 인식되므로, 결과적으로 A→G로 돌연변이를 교정하는 효과를 냅니다. 미국의 웨이브 라이프사이언스 Wave Life Sciences는 이 기전을 활용해 알파-1 항트립신 결핍증 (AATD) 이라는 유전질환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즉 돌연변이로 망가진 mRNA의 특정 염기를 ADAR 효소가 수정하도록 유도하는 작은 올리고뉴클레오타이드를 투여하는 것으로서, 동물실험에서 표적 mRNA의 약 50%만 수정해도 충분한 치료 효과를 냈다고 하며, 현재 영국과 호주에서 임상 1상을 통해 안전성 등을 평가 중입니다. 이 방식은 기술적으로 비교적 단순하면서도, 표적 서열만 정확히 알면 다양한 질환에 응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만 교정할 수 있는 염기 종류 (A→I로 한정) 와 교정 가능 위치 (특정 서열 문맥 의존성)의 제약으로 아직 적용 범위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한 글자만 틀렸다면 지우개로 살짝 고쳐쓰면 된다”는 발상은 많은 유전질환 치료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2) 스플라이소좀 활용 엑손 교정
두 번째 접근법은 세포의 스플라이소좀 spliceosome 를 이용해 잘못된 엑손 조각 전체를 대체하는 방법입니다. 스플라이소좀은 단백질과 RNA로 이루어진 세포 내 복합체로, pre-mRNA에서 인트론을 제거하고 엑손을 정확히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미국 보스턴에 위치한 아시디안 테라퓨틱스 Ascidian Therapeutics는 이 분야 대표 기업으로, 최근 스타가르트병 Stargardt disease 대상 엑손 편집 치료제의 FDA 임상 시험을 승인받았습니다. 스타가르트병은 망막 단백질 생성 유전자에 수십 개의 돌연변이가 뒤섞여 발생하는 실명 질환으로, 아시디안은 돌연변이 엑손 자리에 정상 엑손이 삽입되도록 스플라이싱 신호를 유도하는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아시디안에 따르면 “단일 분자로 한 번에 22개의 엑손까지 대체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으며, 이는 앞서 언급한 단일 염기 교정의 한계를 보완하는 기술로서 2024년 로슈와 최대 18억 달러 규모의 공동개발 계약을 체결하며 잠재력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3) 라이보자임 기반 트랜스-스플라이싱
세 번째로, 한국의 알지노믹스 Rznomics가 선도하고 있는 라이보자임 ribozyme 기반 RNA 편집 기술이 있습니다. 라이보자임은 효소 기능을 지닌 RNA 를 지칭하는데, 알지노믹스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라이보자임을 개량하여 특정 mRNA를 자르고 다른 RNA 서열로 치환하는 플랫폼 기술을 개발하였습니다. 앞서 아시디안 방식이 세포 자체의 스플라이싱 시스템을 활용하는 것이라면, 알지노믹스 방식은 외부에서 넣어준 라이보자임 분자가 직접 표적 mRNA를 잘라내고 붙이는 자가 트랜스-스플라이싱을 유도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를 통해 세포의 종류나 스플라이싱 환경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도 원하는 편집을 수행할 수 있는 유연성이 생깁니다. 알지노믹스는 현재 간암, 교모세포종 등 항암 치료제와 희귀 질환 치료제 등으로 확대 적용하고 있으며, 미국 FDA로부터 교모세포종 대상 RZ-001에 패스트트랙 지정을 받는 등 혁신성을 인정받았으며 일라이 릴리 Eli Lilly 와 RNA 편집 치료제 개발을 위한 글로벌 라이선스 계약도 체결하여 최대 1조 9,000억원 규모의 파트너십을 맺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알지노믹스는 나아가 자사의 라이보자임 기술을 원형 (circular) RNA 분야로도 확장하고 있습니다. 원형 RNA란, 말 그대로 고리 형태로 이어진 RNA로 자연계의 mRNA 에 비해 안정성이 높은 특징을 갖습니다. 이 기술을 활용하면 치료 목적의 mRNA를 원형 형태로 만들어 체내에서 더 오래 작용하도록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라이보자임으로 표적 RNA에 원하는 서열을 삽입하는 동시에 안정성까지 높이는 일석이조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Ribozyme Trans-splicing 작용기전, 알지노믹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유전자를 직접 편집하는 치료는 공상에 가깝게 여겨졌지만, 이제는 DNA를 넘어 RNA 편집 치료제까지 현실화되는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2024년 5월, 스플라이싱 기반 RNA 편집 기술을 보유한 아시디안 테라퓨틱스는 로슈와 약 2.3조원 규모의 파트너십을 발표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로슈는 아시디안 테라퓨딕스와 RNA 엑손 편집 플랫폼을 신경질환 치료제 개발에 적용하기로 했는데, 계약 금액만 4천만 달러에 달할 정도로 미래 가치를 높게 평가받았습니다. 앞서 소개한 웨이브 라이프사이언스 역시 2023년 말 시작한 ADAR 기반 RNA 편집 신약의 첫 임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영국과 호주에서 진행 중인 초기 임상에서 안전성과 타겟 효능을 평가하고 있으며, 결과에 따라 미국 등 에서도 임상 승인과 투자 유치가 가속화될 전망입니다. 한국의 알지노믹스 또한 독창적인 RNA 편집 기술로 글로벌 제약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알지노믹스는 간암 치료제로 시작한 자사의 플랫폼을 교모세포종 (뇌암), 망막질환 등으로 빠르게 확장하며 파이프라인을 늘려가는 중입니다. 뇌종양 대상 치료제 RZ-001은 FDA로부터 패스트트랙 지정을 받아 임상 가속화 지원을 받고 있고, 망막 질환 치료제 RZ-004는 2024년 호주 임상시험계획 (IND) 승인을 받아 글로벌 임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한 로슈와는 간암 치료제 RZ-001과 면역항암제 티센트릭 Tecentriq 의 병용 임상시험 무상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등 글로벌 빅파마들과 공동 개발 네트워크를 빠르게 구축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작은 바이오벤처가 보유한 RNA 편집 플랫폼이 글로벌 제약사들과 활발한 교류를 이끌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RNA 편집 기술이 실현할 치료제의 발전 방향은 한마디로 “정교함과 유연성”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DNA 유전자 가위가 거친 돌도끼처럼 전면적인 변화를 주는 도구였다면, RNA 편집기는 가느다란 만년필처럼 세밀하고도 섬세하게 생명 정보를 고쳐 쓸 수 있는 도구입니다. DNA를 다루는 치료는 한 번 각인되면 돌이킬 수 없지만, RNA 편집 치료는 필요할 때만 메시지를 살짝 고쳤다가 다시 원본으로 되돌릴 수 있는 가변적 치료로서 마치 잘못 쓴 글자를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써넣을 수 있는 연필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과거 “불치”로 여겨졌던 난치병들도 이제는 세포 안 유전 메시지의 몇 글자, 아니면 잘못된 한 문단을 통째로 새로 써주는 것만으로 치료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게 될지 모릅니다.
RNA 편집 치료제는 유전정보를 자유자재로 편집함으로써 의료의 지평을 확장하는 거대한 시도입니다. 인류는 이제 RNA라는 연필을 손에 쥐고, 유전병과 난치병의 문장을 새롭게 써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서막이 열린 지금,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장(章)은 치료 불가능이라 믿었던 질병들을 정복해가는 혁신의 역사가 될 것으로 기대해봅니다.